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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로그/더 멀리] - [230205-10] 휠체어로 도쿄 ②-1 긴자 / 오코노미야키 키지 / 넘버 슈가
점심을 먹고 든든해진 배를 꺼트릴 겸 갓파바시 그릇거리에 가기로 했다. 첫 해외여행 후로 나는 여행지에서 옷이나 그릇 사는 것을 즐기게 됐다. 처음에는 캐릭터 상품, 특히 가챠로 뽑는 귀여운 피규어들 (포켓몬스터, 어드벤처타임...) 을 좋아했는데, 여행지에서나 기쁘지 집에 와서 장식해두면 그 기쁨이 그닥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그릇이나 옷 종류는 그 기쁨이 몇년이 지나도 지속됐다. 어딘가에서 구매한 밥그릇은 식사 내내 그 때를 떠올리게 했고,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며 여행지에서 산 옷을 입으면 또 그 때가 생각나 행복해졌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여행지에서는 일상생활용품을 찾아다니게 됐다.
도쿄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도쿄 갓파바시 거리를 구경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이번에도 그릇을 구매하러 갓파바시로 향했다. 저녁 일정은 갓파바시 - 스카이트리 정도로 크게 잡았다.
히비야역 - (히비야선) - 우에노역
조금 돌아가더라도 시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쭉 가는 노선이 편한 우리(30대, 체력 저하)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히비야선을 탔다. 30분정도 걸렸나보다. 가는 길에 카페인 수급이 필요해져서 배도 꺼트릴겸(?) 커피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도쿄에는 맛있는 커피집이 많다는 사실을 여행이 끝난 후 서점 다다르다 온라인 북클럽에서 알게된게 한이라면 한이다. 진작 알았으면 좀 찾아다니면서 마셔볼걸. 암튼 그래도 우리는 아주 아주 아주 소중하고 일본스러운 로컬 카페를 찾게됐다...히히.
커피집 우사기
여기는 정말, 우리가 알아낸 보물같은 장소다. 다들 그렇지 않나? 나는 해외여행 갔는데 외국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면 괜히 좀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외국 분위기를 느끼러 간건데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온다면... ㅠㅠ 사실 처음 여행했을 땐 한국어가 들려오면 안도감 같은게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하니까... 진짜 일본 다운 장소에 가고싶었다.
히비야선을 타고 가면서 갓파바시 주변에 커피집 몇군데를 구글지도에 표시했다. 휠체어로 출입 가능한지 어떤지는 들어가봐야 알 것 같아서 갓파바시 가는 길에 위치한 곳 몇군데를 체크했다. 그리고 우에노역에서 내려서 슬렁슬렁 걸어갔다. 일본은 보도블럭도 가지런하고 도로가 깔끔해서 오래 다녀도 엉덩이나 허리에 충격이 거의 없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지나가는 길에 몇군데를 보았지만, 가게가 너무 심하게 협소하거나, 턱이 2-3계단 정도 되는 곳은 포기했다. 그리고 2월 초였지만 날씨가 꽤 쓸쓸해서 테이크아웃 전문점도 피했다. 그러다보니 알게된 커피집 우사기다.
우에노역에서 이렇게 가면 금방이다.
위치는 이곳이니 구글 지도에 표시하시면 되겠습니다.
카페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와... 여기가 카페라고? 싶을 만큼 그냥 일반 주택 입구 같다. 물론 가게라는 표시로 파란색 발?이 걸려 있긴 하지만 눈에 띄는 분위기는 아니니 잘 보고 가야한다. 턱은 심하게 업고 미닫이문을 열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다.
카페는 할머니 사장님 한 분이 느긋하게 운영하고 계셨고, 지역 주민들, 특히 어르신들이 몇분 와 계셨다. 카운터에 앉아서 사장님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가장 안쪽에 4인 정도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어서 그 곳에 자리를 잡았다. 휠체어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라 사장님이 싫어하시면 어쩌지... 싶었는데, 전혀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이 카페는 굉장히 느긋하게 운영되는 곳이다. 우리가 보통 스타벅스같은 프렌차이즈에서 좌석에 앉아 간편하게 핸드폰으로 주문하고, 금방금방 호출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할머니 사장님 한 분이었지만, 뒤에 들어보니 할머니 두분과 할아버지 한분이 계시는 것 같았는데 그날 그날 다른 것 같다. 우린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구경하며 사장님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으셔서 다롱이가 주문하러 갔더니, 기다려 달라고 하셔서 얌전히 기다렸다. 메뉴판을 가져오기까지 꽤 걸렸다. 그니까 여긴 진짜- 일본 슬로우무비를 보는 것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뭐 갓파바시 구경하고 저녁에 스카이트리 가는 일정 외에는 다른 일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했다. 그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진도 찍고 폭신한 소파에 앉아 마냥 기다렸다.
사장님이 계시는 공간 뒤편으로 예쁜 커피잔이 전시되어 있다. 커피를 주문하면 내가 직접 고를 수 있다. 나는 동백을 좋아해서 동백 잔을 골랐다. 다롱이랑 디두는 커피 주문이 아니라서 컵은 나만 골랐다. 우리가 앉은 자리 주변으로는 여러가지 일본풍 장식이 있고, 핸드메이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판매도 하시는 듯? 정말... 너무 멋있어. 이런 소박한 카페라니. 드라마에서나 본 장소에 직접 오다니! 그것도 현지인들만 잔뜩!
주문하기까지 10분 정도, 그리고 음식이 나올 때까진 더욱 더 걸렸지만 곧 정갈하고 깔끔한 그릇에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커피는 일본답게 우유가 같이 나왔고, 다롱이가 시킨 밀크티도 나왔다. (적당한게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디두가 시킨 바나나주스와, 우리가 시킨 쉬폰케이크 세트가 나왔다. 옆에 저민 과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용기내서 (구몬 3개월차니까요) 소심하게... "고레와 난데스까?"하고 여쭤봤더니 사장님이 "링고노 쟈무데스!" 하셨다. 근데 다롱이가 망고로 잘못 들어서 "오오! 망고?!" 하길래, 내가 "아니 사과!! 사과라고!" 했더니 다롱이가 엄청 당황했다 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쉬폰케이크 너무 맛있었고... 저 링고노쟈무(사과잼)을 직접 만드신건지, 따로 구매할 순 없는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언어가 딸려서 못물어봤다. 뭔가 자세히 여쭤보면 자세히 대답해주실 것 같은데 내가 알아들을 실력도 아니고 ㅠㅠ
담에 가면... "지분노.. 쯔꿋데 쟈무 데스까?" (물론 확실치 않음) 라고 대충 여쭤보면 그래도 알아듣고 설명해주시지 않을까? 사장님 너무 친절하셨고 인상이 되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가 생각나는 분위기라 너무 좋았는데... 소심한 구몬 3개월차.. ㅠㅠ헤헹;;
갓파바시
사실 해외여행을 가면 가고싶은 곳이 많아서 욕심에 계획을 거의 분단위로 세우는 분들도 많던데. 휠체어로 다니면 돌발상황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막상 갔는데 가게 입구에 계단이 가득이라던지, 열차를 몇개 보내고 타야 한다던지 하는...) 그래서 우리는 그냥 가고 싶은 몇군데만 정해두고 경로에 따라 대충 묶어서 가는 편이고 안되면 말고 하는 유연한 마음을 품고 가는데, 이날은 계획하지도 않게 정말 많은 곳들을 간 것 같다.
카페에서 1시간 정도 정말 느긋하게 쉬고 나와서 갓파바시로 향한 우리. 카페에서 나오면 5분도 채 가지 않아 금방 다다른다. 가는 길에 스카이트리가 멀리 계속 보여서 설레임이 계속됐다. 갓파바시 입구에는 저렇게 갓파바시 모형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아... 여기 갓파바시구나 할 수 있었다.
근데 갓파바시는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꽤 있기는 했지만 그릇 퀄리티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가게마다 개성이 있거나 그렇다기 보다는 대부분 비슷한 물건을 팔고 있었고... 퀄리티도 약간 메이드인차이나스러운게 많아서 딱히 눈에 띄는게 없어서 사지 않았다. 기회 되면 키치조지를 가기로 했던 차여서, 그냥 그릇은 안샀다. 대신 디두가 고양이 접시같은 걸 샀던 것 같다.
갓파바시에서 나와서 스카이트리 쪽으로 가다가 편의점에 잠깐 들렸더니 스파이패밀리 북마커가 있어서 사봤는데, 아냐 북마커가 나왔다. 투명 주머니로 된 북마커라 이후 모든 영수증은 여기다 다 보관했다. 완전 편리했음! (오른쪽 사진은 숙소 와서 찍은 것. 귀엽죠!)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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