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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로그/일상

[230518] 오리우쿨 ① 도레미파솔라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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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낙원상가 기타나라에 직접 방문해서 구매한 우쿨렐레. 한 3개월 쯤 열심히 치다가 방향을 잃고 방 한구석에 세워두었는데, 최근에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이 가야금을 배운다는 이야길 듣고선 가야금 그 자체보단 내 방에 쓸쓸히 서 있는 우쿨렐레가 떠올랐다. 원목이라 계속 쳐줘야 음색이 예뻐진댔는데, 마냥 이렇게 방치를 했다.

독학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어려운 것이다. 요샌 유튜브에 무료 강의 많잖아? 라고들 하지만, 뭐 EBS 방송이 없어서 고딩 때 공부를 못했나? 좋은 교재도 많지만 결국에는 내가 봐야 하는 것. 꾸준히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쏟아야만 실력이 늘텐데 그게 가장 어려운 것이지.

작년 11월부터 시작한 일본어도 그랬다. 일주일에 주어지는 2-30장의 교재가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그걸 풀기만 한다고 언어가 느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 당일이나 그 다음날 교재를 풀고, 다음 수업 전까지 두번이고 세번이고 열심히 써가며, 말해가며 복습을 해야 내 것이 되는거다. 악기도 언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손에 익기까지 정말로 많은 시간이 드는데, 그걸 간과하면 그냥 내 재능 탓만 하고 끝나는 거다. 그러면 내게 남는 건 ... 한번 해보다 포기했어-라는 말 밖에.

작년에 우쿨렐레를 칠 때는 의외로 연습은 많이 했다. 내가 짚는 코드대로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고, 새로운 코드를 알아갈 때마다 오 이런 소리를 내다니? 하고 감탄하며 정말 재미있게 쳤다. 그치만 곧 방향을 잃고 픽- 쓰러졌다. 또 뭘 배워야 하는거야? 핑거스타일? 계속 반주만? 게다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내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니다. 유튜브를 보면 쉬워 보이는데 나는 안되니 손가락이 짧아서? 굵어서? 둔해서? 굳은살이 배기지 않아서? 뭐 별별 핑계로 합리화를 하다가 결국엔 에이, 나한텐 너무 어렵네 하고 내려놓아버렸던 거다. 그때도 사실 학원에 가거나 레슨을 받고 싶었는데 지금만큼의 열의는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아파트에서 연습하는 게 시끄러울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다 자기 합리화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김에 레슨을 알아보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대부분의 레슨은 다 휠체어로 접근하기 힘든 건물의 연습실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지하라던지, 계단이 없는 2-3층 건물이라든지. 아니면 집에서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게다가 나한텐 룸메이트도 있으니까. 불편할 수도 있고. 아니 근데 혼자 살아도 누군가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들이겠는가. 그래서 학원도 알아보았는데, 대부분 다 멀거나 (휠체어로 가기에 1시간은 걸릴 거리)  작은 공간이라 휠체어 출입이 불가하거나, 계단이 있어서 아예 올라갈 수도 없거나였다. 줌 레슨도 해볼까 했는데... 좀 부담스럽고. (서울인데 이 정도라고?)

그래서 포기할까 했는데 급, 실력자가 떠올랐다. (진작에 물어볼 걸) 퇴사하고 아예 음악 쪽으로 방향을 튼 나의 지인 오리 오빠는 최근에 학교에서 수업을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냉큼 물어봤더니 오케이 해버린. 그것도 꽤 저렴한 가격에!! 보통 우쿨 수업은 주1회정도 하지만, 나는 일정을 고려해 월2회로 얘기했다. 바로바로 오케이! 역시 능력자 지인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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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나오고 바로 다음 날부터 수업을 하기로 했다. (성격이 급한 편) 퇴근 하고 신나게 집에 가서 호다닥 밥을 챙겨 먹고 화상 회의를 연결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한 분위기 (ㅋㅋㅋㅋ) 그치만 오빠는 평소에도 그렇듯이 말주변이 좋고 배려가 있는 사람이라 어색함을 가만히 두지만은 않았다. 기본적으로 왼손 우쿨을 쓰는 내 상황을 알고 있어서 그에 맞춰서 잘 가르쳐줬다. 이론적인 내용과 치는 법을 여러가지로 알려주었다. 내가 저번에 무너진 지점은 핑거스타일이었다. 물론 코드도 아주 기본적인 (C, F, G, G7 정도?) 만 기억에 남았지만... 그거야 뭐 차차 연습하면 되는 거고. 음계를 파악하기 힘드니까 허덜덜 했던 기억. 곧 비행기와 학교 종 등등을 연습했다. 오... 이게 되네... (헷갈려서 허둥지둥했지만)

담 시간까지 피크 찾아보고... 악보책도 찾아보라고 했던가 (벌써 가물) 그리고 죽도록 연습하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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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재미있어서 혼자 1시간 정도 연습하다가 일본어도 하고 일기도 쓰고 11시 반쯤 되었는데, 핑거스타일 연주는 생각보다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서 조용히 연습을 좀 더 했다... (30분 정도?)

나 제대로 잘 칠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좀 낫겠지? 열심히 쳐봐야지!! 그리고 그 과정을 여기에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