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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학습 기록

[구몬 일본어] A단계부터 D단계에 오기까지-

일본어를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기로에 섰을 때 내 앞에 주어진 일본어와 프랑스어라는 선택지 중 한참을 고민했더랬다. 일본은 가까우니 갈 기회가 훨씬 많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어순이 같다는 너무나도 큰 장점이 있었다. 대신 프랑스어는 멀지만 뭔가 고상하고 유니크해 보였다. 고민하다 결국 나는 현실을 택했고, 당시 시험 때문에 벼락치기로 교과서의 회화문을 외우고 선생님이 개사한 요상한 노래에 맞추어 숫자 읽는 법을 외웠던 것 같다. 그게 다였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학교 평생교육원에 일본어 수업이 있어서 신청했다. 내가 기대한 일본어 수업은 함께 대화하고 여러 일본 문화를 자연스레 익히는 모습이었는데, 예상 외로 선생님은 꽤 나이가 있으셨고 고등학교 수업처럼 학생들을 가르쳤다.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직장인이 되었고, 영어 외에 다른 언어 하나 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수업을 알아보았다. 사실 마음은 오프라인 학원을 가고픈데, 휠체어를 타는 내 여건상 갈 수 있는 학원이 많지도 않고 멀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격도 꽤 쎄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온라인 강의 사이트 수강권을 끊거나 교재를 샀다가 중도 포기하기를 반복... 이유는 뭔가 내 기준에 진도가 너무 빠르고, 외울 것들이 너무 많은데 외울 시간을 도저히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난 암기력이 꽤 좋지 않은 편인데 이런 방법은 도저히 내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또 포기.

그러다 3년 전 쯤, 그러니까 2020년 쯤 우연히 관심있는 일본인 배우 겸 가수가 생겼다. 그는 일본 드라마에 나와서 대히트를 쳤는데 알고 보니 그 드라마의 수록곡도 그가 만들고 부른 것이었다. 덕질을 하며 알게된 건 그가 책도 꽤 여럿 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덕후의 마음으로 일본 옥션사이트에서 세트로 책을 모조리 구매했다. 

며칠 후 일본에서 택배가 도착했다.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뜯었는데, 내게 돌아온 건... 내가 까막눈이라는 깨달음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실린 매거진부터 그가 쓴 여섯 권의 책 모두 제목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후에 다행히 한 권 정도는 번역이 되어 국내에 출판되었지만 나머지 이야기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흰 종이에 꼬부랑 히라가나와 한자만 가득한 책이라니... ㅠㅠ

그리고 그 해가 지나 갑자기 코로나19가 시작됐다. 덕심을 불태워 한일관계가 회복되면 놀러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의 문이 닫혔다. 서점에 가서 그가 나온 책을, 레코드 점에서 그의 앨범을 구매하려고 했던 나의 꿈은 모조리 무너졌다. 그치만 다행히 이 연예인은 SNS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그래서 화면으로 대충 그의 신곡 발매 소식이나 드라마 출연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는지는 도저히 알 수 있는 길이 없었고, 그나마 텍스트로 나온 건 긁어서 번역기를 돌려 어정쩡한 메시지로만 접할 수 있었다. 라디오는 더욱이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뭐라뭐라 빠르고 신나게 말하다 빵빵 터져 웃지만 나만 웃지 못했다. 한숨만이 가득한 덕질이었다.

 

좀 더 효과적인 일본어 공부 방법은 없을까?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려고 일본어 공부를 다시 고민했다. 지난 실패의 경험들을 떠올렸다. 주입식으로 무작정 외워 시험을 보게 했던 고등학교 수업부터, 재미 없는 대학 때의 수업, 그리고 내 리듬과는 도저히 맞지 않고 정보만 잔뜩 우겨넣은 온라인 강의와 교재까지. 실패를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몇년 전부터 SNS에 주구장창 올라오는 직장인 대상의 얇은 학습지 광고와 하루 10분 정도의 가벼운 강의들을 검토했다. 잠깐 하는 공부만으로 학습이 된다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 남들은 가능한지 몰라도 나는 솔직히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구몬이 떠올랐다.

구몬은 몇년 전 직장 동료 몇명이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중국어였지만, 중국어도 꽤 괜찮다고 했다. 생각나서 그때 학습했던 동료에게 물어봤더니 좋다고, 괜찮다고 해서 결국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 받은 10월 쯤엔 슬슬 코로나19가 완화돼서 일본 여행이 풀릴 분위기였다. 공부 열심히 해서 일본 여행도 가면 괜찮겠다 싶어서 얼른 수강신청을 했다. 


2022년 11월, 히라가나만 대충 아는 상태에서 A단계부터 시작했다. 한달치씩 교재를 택배로 받고, 화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첫 수업 날 교재를 미리 풀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일단 30장 정도 교재를 풀었었다. 그런데 안풀어도 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진도를 정해주시는 것이었던... 그것도 모르고 잔뜩 긴장해서 미리 풀어두다니 ㅋㅋ 그래서 한 주간 복습만 해야하는 처지가 되어서 노트에 무작정 교재에 나오는 문장을 입으로 소리내어 읽으면서 적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한꺼번에 2-30장을 하기는 힘들어서, 그냥 하루에 10장 정도만 복습을 했다. 그렇게 하면 두세번 정도 복습을 하는 게 되어서 다음 주 선생님과의 수업에서 보다 원활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주부터는 진도를 2-30장씩 꾸준히 나갔다. 난 금요일에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수업을 듣고 자기 전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좀 남으면 그냥 바로 교재를 10장이라도 풀고 잤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내로 교재를 다 풀어버리고 나머지 시간은 복습으로 가득 채웠다. 처음엔 집에 가지고 있던 남는 노트를 연습장 삼아 썼었는데, 지금은 그 노트는 벌써 다 썼고, 벌써 세번째 노트다. 심지어 세번째 노트는 굉장히 두꺼워서 오래 쓸 줄 알았는데, 레벨이 올라갈 수록 문장 길이도 길어지고 복습할 것이 많아져서 노트가 금방 소진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마음 먹고 엄청 두꺼운 줄 노트를 네권 정도 사서 쟁여놓았다. 이거 다 쓰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매일매일 이렇게 쓰면서 학습하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교재에서 새로운 한자나 표현을 만나면 '이걸 어떻게 외우고 쓰지...' 싶어서 엄청 아득한데, 이렇게 쓰면서 두세번 복습하고 나면 자연히 한자는 외워져 있다. 구몬의 가장 좋은 점은 표현을 적당히 섞어가며 다양한 문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충분히 연습할 수 있도록 교재를 구성했다는 점인 것 같다. 쓰면서도 은근히 단어가 다양하게 활용되어 있어서 질리지도 않는다. 어쩜 이렇게 세심하게 커리큘럼을 짰을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구몬 교재 중간 중간에 나오는 스토리도 재미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을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겠지만 일본어 단어가 새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때에도 그냥 한번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이전 페이지 내용을 또 복습하게 구성한 점도 좋다. 이 문장들을 노트에 반복해서 두세번 쓰기만 해도 자동으로 외워지는 시스템이라니 너무 좋다.


그렇게 하루하루 착실하게 교재를 풀고 복습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더랬다. 친구들과 5일 정도 도쿄에 머무르며 여행을 하기로 했다. 대학교에 근무하는데, 마침 시기가 방학의 끝무렵이라 딱 한가한 때였다. 당시에는 B단계 정도를 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정도 해서 여행이 가능할까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하고 갔으니까 그나마 좀 들리지 않을까 싶었다.

긴자와 아사쿠사, 센소지와 스카이트리, 선샤인시티와 돈키호테, 키치조지와 디즈니랜드까지... 너무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와, 근데 일본어가 진짜 신기하게 들렸다!! 전철을 탈 때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어디서 내리시나요? 등을 물어보는데 구몬에서 배운 'おりますか’라는 단어가 갑자기 쏙 들어왔다. 길을 물어볼 때도 '〜から〜まで’ 표현을 마구마구 활용했다. 그림책을 사러 츠타야 서점에 갔을 때에도, 그림책의 위치를 물어보았더니 ’となり'라는 표현을 쓰며 위치를 설명해주는게 들렸다. 세상에!! 겨우 3개월 하고 떠난 여행에서 이렇게나 많이 써먹다니. 여행을 다녀오고 더 열심히 하고싶은 열의가 마구마구 솟았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사실 일본어 수업을 한주 빼먹었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미리 도쿄 여행간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여행 뒷 주에 선생님께서 그걸 기억하시고 잘 다녀오셨냐며 일본어로 물어주셨다. 으아!! 덕분에 너무 재밌었어요 ㅠㅠ!! 정말 정말 다시 또 가고싶은데, 다음에 갈 때는 훨-씬 유창해져서 가고 싶다. 그래서 이후로도 그 추진력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종종 내가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을 일본어 자막을 켜두고 보곤 한다. 그럼 분명 지난 주에 몰랐던 표현인데 교재에서 배우고 나면 막 들린다. 아직 활용형을 다양하게 배우는 수준까진 가지 못해서 완벽하게 어감을 아는 건 아니지만, 대충 단어 뜻이라도 알고 파악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저번 일본 여행에서 사온 일본 그림책도 심심하면 들여다보는데, 처음엔 몰랐는데 단어가 툭- 튀어나오듯 보일 때가 있다. 와!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신기해하며 소리내어 읽는다. 5살 짜리 아이가 글자를 처음으로 배우듯,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 그래서 한주 한주 일본어 공부가 기대되고 설레인다. 이번주는 또 어떤 내용을 배울지 고대하다가 막상 처음으로 접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또 열심히 교재를 풀고 복습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금방 습득될테니까 괜찮다.

내가 무언가를 이렇게 오래 꾸준히 해오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구몬의 체계적인 교재 구성과 더불어 선생님의 친절한 강의에 지속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계속계속 해서, 언젠간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과 유창하게 대화하는 날이 오기를, 자격증도 따서 일본에 어학연수를 하는 날도 언젠간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