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대만에 아주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 2023년 말, 친구들과 여행을 도모하며 어디로 갈지 정할 때, 후보지가 ‘싱가폴’과 ‘대만’ 이렇게 두 곳이었다. 일본은 그동안 여러 번 가 보았으니 일본이 아닌 곳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멀리 가기엔 각자 직장생활에 타격이 크니 비교적 가까운 곳 중에 선택해야 했고, 휠체어를 타는 나와 함께 다니기 좋은 환경이어야 해서 꼽은 두 곳이었다.
당시 나와 디두는 대만과 싱가폴 두 곳 모두가 처음이었는데, 다롱이는 대만을 가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싱가폴을 추구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롱이는 대만을 추천했다. 생각보다 대만이 다니기 편하고 놀거리가 많다는 것이었다. 난 양쪽 다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여서 어느 곳이든 좋다고 했고 디두도 호의적이어서 대만에 가게 됐다.
당시 일정은 5박 6일. 3박 4일은 타이페이에서 다롱, 디두와 함께 보내고, 나머지 2박 3일은 가오슝에 다롱이와 머무르기로 했다. 디두는 휴가를 길게 쓰기 어려워 가오슝 일정은 동행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내 중화권 경험은 홍콩이 전부였는데, 홍콩에 대해 힘든 기억만 한가득이어서 대만도 비슷하리라 생각하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다녀온 후 대만은 내게 있어 최고의 여행지가 되었다.
일단 생각보다 휠체어로 다니기가 너무 편했고, 미식의 나라답게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했는데 대부분이 내 입에 잘 맞았다. 더군다나 웬만한 곳에 가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친절해서, 타국이긴 하지만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가진 긴 기간동안의 휴식에 완전 힐링해서 돌아온 너무도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그래서 대만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품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대만의 \<1938 타이완 여행기\>가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여행지나 음식에 대한 좋은 기억은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문학 작품이라… 지금까지 내게 문학작품으로 익숙한 나라는 겨우 영미권 아니면 일본 정도다. 심지어 중국 문학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생겨났다. 그러던 와중에 독서모임 기회로 읽게 된 것이다. 읽고 나서 보니 마침 대만이랑 행사하는데도 도움이 되어서 여러모로 좋았다.
------------ << 여기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대만이 원래는 중국의 섬이었는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독립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원주민이 살고 있다가 중국과 유럽의 열강들에게, 그리고 일본에게 지배당한 역사가 기나긴 곳이었다.
책은 1938년, 일본의 여성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통역사 ‘왕첸허’와 함께 대만을 여행하며 시작된다. 왕첸허는 치즈코가 가진 여행과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몹시 정성스레 충족시켜주며 비서 역할까지 도맡는데, 이 과정에서 치즈코는 왕첸허가 원주민으로서 대만 내부에서 받는 차별, 그리고 식민지의 국민으로서 받는 차별을 보고 부당함을 느낀다. 치즈코는 왕첸허를 보호하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왕첸허는 어째서인지 그럴 때마다 치즈코의 호의를 자꾸만 거절하고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왕첸허에 대해 의문만 쌓여가는 치즈코. 왕첸허가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대만 원주민 문화에 박식하고 외국어에 능통한 이유도, 치즈코 자신과 가까워진 듯 하다가도 멀어지는 이유도 도무지 유추할 수 없었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여럿 있었다. 첫째로는 전세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대만의 역사와 원주민 문화를 음식이라는 아주 친밀한 소재를 통해 알려준다는 점이다. 대만에 대해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책에 나오는 여러 음식이 좀 낯설 수 있겠지만, 중심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을테고, 대만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어 본 사람이라면 무척 친밀감있게 책을 읽어나갈 것 같다. 내 경우에는 몇년 전 대만을 여행할 때 먹었던 루러우판이 굉장히 취향에 맞았는데, 책의 한 챕터가 루러우판이어서 굉장히 반갑고 설레고 그리워서 괴로워하면서 보았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들조차도 너무 궁금해서 미칠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출신에 따라 차별받는 모습도 자연스레 보여준 점이 인상깊었는데, 단순히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 뿐 아니라 고등여학교의 두 학생의 구도를 통해 대만 사회 내에서 어떤 계급이 존재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각 계급이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가, 그러니까 문화적으로 비유하자면 동등하게 섞일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왕첸허가 마지막까지 치즈코와 함께하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새로웠던 건 대만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였다. 흔히 대만과 한국은 공통적으로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주권을 빼앗긴데다가 일본이 대만에 비해 더욱 더 강하고 악랄한 짓을 많이 해서 일본에 대한 반감이 많고, 대만은 그동안 다른 식민 역사가 많았는데 그나마 일본이 중앙집권적으로 비교적 잘(?) 통치해서 일본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대충 내가 알고 있던 건 이 정도였다.) 하지만 책에선 일본의 식민 통치 체제가 어떠했든지, 두 나라가 동등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시사했다고 생각한다. 그니까… 대만이라고 또 마냥 좋았던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새삼 좀 놀랐달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즈코와 왕첸허의 관계가 단지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달달하고 너무 심각했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내용이 대놓고 나오는 건 아니지만서도 나중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걸 보면 확실히 LGBTQ 소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에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대만의 다양성 서사 관련 강연이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대만은 80년대부터 여성주의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는데 그때 성소수자의 인권도 함께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시아에선 가장 빨리 동성혼이 인정되는 나라가 되었다고. 그러니까 이러한 서사가 등장하는 건 굉장히 자연스럽다. 출신에 따라 차별받는 구조에 성소수자의 입장까지 가미한 건 또 하나의 계급이 더해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래서 더 소설이 복잡해지고 입체적으로 구사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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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홉번째 챕터를 읽을 쯤만 해도 이 책이 어떻게 끝나려고 이렇게 계속 가는걸까? 어떤 점에서 부커상을 받은 걸까? 의문 투성이었다. 하지만 열번째 챕터를 지나며 슬슬 깨닫게 되었고, 열한번째 챕터에서 마침내 뒷통수를 한방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부분에서 치즈코가 왕첸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나 또한 그다지 왕첸허가 이해가 안갔기 때문이다. 그냥 치즈코를 따라가면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텐데 왜 자꾸 물러날까? 라고 의문만 가졌다. 그치만 “당사자에게 물어보았는가?”라는 반문이 등장하자 나도 얼떨떨했졌다. 그러네… 그러니까, 나도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꽤 일방적인 사람이었네. 싶었다. 하하.
가볍게 시작했으나, 끝에선 무겁게 “그럼에도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여운이 남았던 책이다. 부커상, 아무나 받는 거 아니었네. 이번 대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읽기에 너무 좋았던 책이었다.
다음에 대만 문학을 읽는다면 그땐 꼭 리앙 작가님의 ‘살부’와 황우이전 작가님의 ‘나의 부치 엄마’를 꼭 펼쳐야지. 그나저나, 대만 가고싶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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